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C. S. 루이스 (문단 편집) == 기독교 신앙 == >"[[기독교]]가 [[인간]]이라는 기계의 전체 설계도라면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게 당연합니다. [[원죄|우리 모두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그 설계도에서 이탈]]했고, 원래 설계도를 변경한 [[교만|자신의 설계도야말로 진짜라고 믿고 싶어]]합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기독교적인 것에는 이런 반응이 거듭 나타날 것입니다. 즉 누구나 거기(기독교)에서 끌리는 부분을 발견하지만, 오직 그 부분만을 골라낸 뒤 나머지는 버리고 싶어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또한 정반대의 주장을 펴는 사람들이 '''자신이야말로 기독교를 옹호하기 위해 싸운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순전한 기독교》, 141쪽.] >요즘에 어떤 이들은 자선이 필요없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며, 가난한 이들에게 무엇을 주기보다는 그런 가난한 자들이 없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그야말로 옳은 말입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지금 가난한 자에게 주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모든 기독교의 도덕과 결별하는 것과 같습니다.[* 《순전한 기독교》, 143쪽.] 청년 시절 그는 기독교를 믿지 않으려고 애썼고, 기독교를 받아들인 뒤에도 한동안 미사만 참여할 정도로 기독교 예식 전반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말년에는 싫어하던 성가에 대해서도 경의를 표하게 되었다고 한다. 루이스의 핵심적인 기독교관은 '''기독교의 범주를 엄격하게 구분해야겠지만, 그 안에 속하는 여러 교파들간의 차이는 기독교와 비기독교 사이의 차이에 비하면 미미하다''' 정도. 덕분에 루이스는 기독교로 회심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갈등과 고뇌를 느껴야 했는데, [[모더니즘]]적인 그의 성격상, 기독교에 투신한다는 것은 '''삶의 양식을 뜯어고쳐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성공회 내의 저교회파/고교회파간 차이, 여러 개신교 종파간의 차이, 가톨릭과 정교회, 개신교 계열의 차이 같은 것들은 비교적 사소한 것으로 여겼다. 어차피 자세한 교리에 있어서 의견이 다른 것은 부차적인 문제이고, '[[삼위일체|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예수]]를 구세주로 고백한다'는 기독교의 핵심 교리를 받아들이냐 마느냐'가 진짜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본인은 만년까지 가톨릭 신도가 아니었지만, '가톨릭 신자들이 마리아론에 대한 비판을 들었을 때 일면 기사도적인 분노를 느끼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정도로 유한 언급을 하기도 했다. 루이스의 입장에서는 결국 기독교 내 여러 분파들은 '''기독교라는 같은 건물에 입주한 여러 세대의 다른 가정들'''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순전한 기독교>는 이러한 루이스의 기독교관을 잘 드러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예수가 잘난 인간이라면 모를까 초월적인 구세주라고 하기는 그렇다'는 논리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선을 긋고 반대하고 있다. '예수를 구세주로 받아들이든지, 미친 놈 취급하든지 자유지만 '''그 중간은 없다''''는 단호한 입장이다. >"유대인 가운데 한 남자가 갑자기 나타나 '''하느님으로 자처하며 다니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는 자신에게 사람들의 죄를 용서해 줄 권한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전부터 항상 존재해 왔다고 했습니다. 또 마지막 날 다시 와서 세상을 심판하겠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습니다. [[힌두교]]인 같은 범신론자라면 얼마든지 자기가 신의 일부라고 말하거나 신과 하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한테는 이 말이 하등 이상하게 들리지 않을 수 있지요. 그러나 이 사람은 [[유대인]]이었고, 따라서 그가 말하는 하느님은 그런 범신론적인 신이 아니었습니다. (중략) '''이 점을 생각한다면, 이 사람의 말이야말로 인간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가장 충격적인 말임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의 주장 중에 이제는 우리 귀에 너무 익은 나머지 무심코 흘려듣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죄를 [[용서]]해 준다'''는 말, 그 어떤 죄라도 용서해 준다는 말입니다. 이 말을 한 사람이 하느님이 아니라면, '''이것이야말로 웃음이 나올 정도로 황당무계한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용서라는 것은 해를 입은 사람이 해를 끼친 사람에게 베푸는 것입니다. 즉 여러분이 제 발을 밟았을 때, 제 돈을 훔쳤을 때 제가 여러분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발을 밟히지도 않았고 자기 돈을 도난당하지도 않았으면서 다른 사람의 발을 밟고 돈을 훔친 당신의 죄를 용서해 주겠다고 선언하는 사람'''이 있다면, 과연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그것은 아무리 부드럽게 표현한다 해도 '''얼간이 짓'''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행동입니다. 그런데 예수가 바로 그런 행동을 한 것입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죄가 용서받았다고 선언했으며, 그들의 죄에 피해를 입은 이들의 의견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스스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당사자'''인 양 행동했습니다. 이것은 그가 '''정말 하느님일 경우에만 이해할 수 있는 행동'''입니다. 모든 죄는 '''하느님의 법을 깨뜨리며 그의 사랑에 상처를 입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이 아닌 존재가 이런 말을 했다면, 역사에 등장했던 그 어떤 인물보다 '''우스꽝스럽고 자만에 찬 짓'''을 했다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는(이것은 이상하고도 의미심장한 사실인데) 예수를 반대하는 사람들조차 복음서를 읽을 때 그에게서 우스꽝스럽거나 자만심에 차 있다는 인상은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편견 없이 복음서를 읽는 사람들은 두말 할 나위가 없지요. 예수는 스스로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했고([[마태오 복음서|마태]] 11,29), 우리는 그의 말을 믿습니다. 그러면서도 그가 인간에 불과할 경우, 온유나 겸손과는 아주 거리가 멀다고 해야 할 말들을 자주 했다는 사실은 알아채지 못하지요. >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나는 예수를 위대한 도덕적 스승으로는 기꺼이 받아들이지만, 자신이 하느님이라는 주장만큼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말을 그 누구도 못 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이런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인간에 불과한 사람이 예수와 같은 주장을 했다면, '''그는 결코 위대한 도덕적 스승이 될 수 없습니다.''' 그는 [[정신병자]]-자신을 삶은 계란이라고 말하는 사람과 수준이 똑같은 정신병자-거나, 아니면 지옥의 [[악마]]일 것입니다. > 이제 여러분은 선택을 해야 합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었고, 지금도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미치광이거나 그보다 못한 인간입니다.''' 당신은 그를 바보로 여겨 입을 틀어 막을 수 있고, 악마로 여겨 침을 뱉고 죽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그의 발 앞에 엎드려 하느님이요 주님으로 부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위대한 인류의 스승이니 어쩌니 하는 선심성 헛소리에는 편승하지 맙시다. '''그는 우리에게 그럴 여지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그럴 여지를 줄 생각이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다만 이 논리는 기본적으로 기독교의 성경, 그 중에서도 예수의 언행을 다룬 복음서가 논리적으로 일관성이 있으며 신뢰할 만한 사실에 대한 기록이라는 점을 전제할 때 유효성을 얻는다. 예를 들어서 [[무슬림]]들은 예수를 선지자로써는 인정하지만 복음서를 믿지 않는다. 그렇지 않을 경우 자신들의 종교 서적을 바탕으로 그 서적의 신뢰성을 부정하는 사람들에게 '''예수가 미친놈인지 구세주인지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부당한 [[흑백논리]]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점은 [[리처드 도킨스]]나 [[크리스토퍼 히친스]] 같은 유명 [[무신론]] 인사들에게 통렬히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들 중에서도 리처드 도킨스는 자신의 저서에서 이 논리를 직접 언급하며, 익명의 불특정다수가 편찬한 복음서는 신뢰할 만한 기록이 아니라며 [[라이프 오브 브라이언|'예수는 오해를 받았다']]는 주장을 제시했다. 또한 기독교 신학계의 최고봉 중 하나인 [[토마스 아퀴나스]]도 맹비난한 적이 있다.] [* 또한 세속주의자였던 [[자와할랄 네루]] 역시 자신의 저서 [[세계사 편력]]에서 "예수는 자신이 신의 아들이자 인간의 아들이라고 했지만 이것이 반드시 [[삼위일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싯다르타]] 역시 자신의 의사와 상관 없이 후세에 숭배의 대상이 되고 힌두교 신의 아바타로 취급받았다"라 평했다.] 그의 주장은 기독교 대 외부세계가 아니라 기독교 내적으로 보다 유의미한데, 논리적으로 볼 때 '''복음서의 내용을 취사 선택해서 받아들이는 신앙관'''에 대해 매우 강력한 반론이 되기 때문이다. 복음서의 내용에 따라 예수를 뛰어난 인간으로 인정하지만 삼위일체의 하느님이자 인류의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건 좀 후대의 오바가 아닌가, 하는 식의 기독교 내적인 절충주의에 대해 루이스가 가하는 비판이 바로 저것인 셈. 해당 구절이 등장하는 저서 <순전한 기독교>의 목표는 무수한 종파로 나뉘어진 기독교의 공통적 본질을 제시하는 것에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론을 부정하는 절충주의를 기독교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없다는 통찰을 주장의 형태로 제시한 것이 바로 위 제시문의 목표라고 할 수 있다. 당연하지만 기독교 신자가 아닌 사람들을 납득시키기에는 주장의 전제부터 공격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좌우지간 루이스의 저서에서 인간성에 대한 흥미 있는 통찰이나 [[기독교 근본주의]]와 운동화된 기독교 등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를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또 성공회의 오랜 대립 문제인 고교회파와 저교회파에 대해서도 어느 한편에 서지 않았다. 말년에 상당히 가톨릭에 호의적인 태도로 있었다는 평가도 많고, 실제로 가톨릭계 서적들에서도 자주 인용되는 인물. > 교만의 반대편에 선 미덕은 겸손이다. 겸손을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면 '사람은 누구나 교만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겸손의 첫 단계라 말해주고 싶다. 적어도 이 단계를 밟기 전에는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만일 자신이 교만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가장 큰 교만이다. >---- > 순전한 기독교 (라디오 방송 편집본) [[진화론]]을 자신의 신앙과 융합시키려고 시도했던 그의 어록을 여기 잠깐 인용해 보자. > "...신은 동물의 형상을 완성했고, 그것은 [[진화|장차 인간의 매개체가 되고 신의 형상이 될 것이었다.]] (중략) 그러나 그것은 동물일 뿐이었다. 모든 물리적, 정신적 과정이 물질적이고 자연적인 것들만을 목표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구의 나이|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 신은 이 유기체의 심리와 생리에 '나' 라고 하는 새로운 의식을 심어주었는데, 그 의식은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으며, 신을 알고, 진실과 아름다움과 선을 판단할 수 있으며, 시간 너머에 존재하면서 흘러가는 시간을 감지할 수 있는 인식이었다... (중략) > > ...우리는 신이 이런 창조물을 얼마나 많이 만들었는지, 이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에덴|천국 같은 상태]]를 지속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들은 머잖아 끝이 났다. 누군가는 또는 무언가는 자기들이 신이 될 수 있다고 속삭이기도 했다. (중략) 이들은 신을 향해 "이건 우리 일이지 당신의 일이 아니오" 라고 말할 우주 어딘가의 후미진 곳을 원했다. 그러나 그런 후미진 곳은 없다. 이들은 명사가 되고 싶었지만 단지 형용사에 머물렀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러할 것이다. 우리는 그 자기모순의 불가능한 소망이 어떤 행위에서 또는 일련의 행위들에서 표출되었는지 알 길이 없다. 내가 알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 소망은 아마도 [[선악과|열매를 말 그대로 먹는 행위]]와 관련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문제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 > C.S.Lewis (F.Collins, pp.210~211에서 재인용) 루이스는 '기독교'의 범주를 정하는 데 있어서는 완강한 편이었고 스스로 신앙을 가질지 판단하는 여부에서도 엄격했지만, 기독교 안으로 들어온 뒤로는 기독교 바깥의 사상이나 과학적 연구 등에는 상당히 열린 자세를 유지했다. 가령 외우주에 인류와 별도의 문명이 존재한다면 '''그들에게는 그들을 위한 그리스도가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그건 우리가 아직 모르는 일'''이라는 정도의 주장을 하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